백수가 전화 한 통으로 섬으로 이주, 정신 차려 보니 통기타
제1화 다이제스트에서도 살짝 이야기했지만, 이번에는 고하마섬・이시가키섬에서 보낸 3년쯤의 시간을 좀 더 자세히 써 볼게요. 결론부터 말하면, 이때의 저는 거의 백수였어요.
계기는, 실업급여가 끊기는 날의 전화
홋카이도에서 태어나서 자란 제가 왜 멀리 떨어진 오키나와의 외딴 섬에 있었을까요. 사실 이 이야기, 저 스스로도 조금 운명 같다고 느끼고 있어요.
고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들어간 회사에, 그때 신세를 지고 있던 상사가 있었어요. 그분이 회사를 그만둔 뒤 어쩐 일인지 고하마섬으로 이사해서 살고 있었던 거예요. 반면 저는 회사를 그만두고 딱히 할 일도 없이,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"뭐, 언젠가 뭔가 찾겠지" 하는 정도의 텐션으로 지내고 있었어요. 말하자면 백수였죠.
그리고 마침 그 실업급여를 받는 마지막 날. 바로 그날, 그 상사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왔어요.
"지금 고하마섬에 있는데, 안 올래?"
실업급여가 끊기는 바로 그날 온 전화. 타이밍이 너무 절묘해서 정말 웃음이 나왔어요. 우연이라면 그걸로 끝이지만, 일도 없이 한가하게 지내던 그때의 저는 "지금 아니면 안 된다"는 타이밍이 맞아떨어진 게 묘하게 운명처럼 느껴졌어요. 깊이 생각할 틈도 없이, 정신을 차려 보니 짐을 싸서 섬에 가 있었어요. 20대 초반의 일이에요.
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데, 그때의 저는 "오키나와에 가려면 여권이 필요하다"고 진심으로 믿고 있었어요. 아버지한테 "오키나와 가니까 여권 만들어야겠다" 하고 진지하게 상의했더니, "너 지금 몇 년도인 줄 아냐" 하고 진지한 얼굴로 한마디 하셨던 게 지금도 기억나요. 홋카이도 밖으로 거의 나가 본 적이 없던 그때의 저한테는, 그 정도로 오키나와가 먼 곳이었다고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어요.
기타 한 대와, 얼떨결에 시작한 FM 라디오 MC

고하마섬에 들고 간 기타는, 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사 주신 1만 엔짜리였어요. 여권 사건 때와는 달리, 이때만큼은 아버지도 아무 말 없이 사 주셨던 게 기억나요. 그 기타 한 대로, 고하마섬 그리고 이시가키섬에서 통기타를 치며 지내는 날들이 이어졌어요. 이시가키섬 상점가 행사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, 동네 분들 사이에 끼어서 작은 라이브를 하기도 했어요. 그렇게 큰 활동은 아니었지만, 노래하는 것 자체가 정말 즐거웠던 걸로 기억해요.
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건, 이시가키섬 고등학생들이 만든 영화의 엔딩 테마를 만들게 된 일이에요. 마을을 살리기 위한 기획이라서 전국에 공개된 건 아니고 섬 안에서만 상영됐지만, 제 노래가 누군가의 작품 엔딩을 장식했다는 경험은 지금 생각해도 특별해요.
그러던 중에, 지역 FM 라디오에서 MC를 맡게 되는 기회도 있었어요. 대본대로 말하기보다는 그 자리에서 떠오른 걸 이야기하는 스타일의 방송이었는데, 이게 저한테 아주 잘 맞았어요. 노래하는 것뿐만 아니라, 말하고 전하는 것도 저한테 자연스러운 표현 방법 중 하나라는 걸 이 무렵부터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아요. 설마 일 때문에 시작된 섬 생활에서 이런 적성을 찾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.
자유롭고 즐거웠지만, 뭔가에 이끌리고 있었다

【사진】저, 너무 즐겨 보이나요?
섬 생활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자유로웠어요. 아침에 일어나서 바다를 보고, 낮에는 느긋하게 지내고, 밤에는 누군가의 집이나 가게에서 노래를 불렀어요. 시간이 흐르는 방식도 도시와는 완전히 달랐어요. 그때의 취미는 주로 웨이크보드(사진은 그때 걸 찾아왔어요)와 스노클링이었고, 쉬는 날에는 그냥 바다에 나가서 파도를 타던 기억이 있어요.
솔직히 말하면, 이 시기는 정말 즐거웠어요. 사람 복도 있었고, 돈이 없어서 힘들었던 것도 아니에요(애초에 실업급여로 시작한 생활이라서 사치는 처음부터 포기했지만요 ㅎㅎ). "채워지지 않는다"기보다는, 오히려 가득 차 있던 시기였다고 생각해요.
다만, 잊을 수 없는 사건이 하나 있어요. 고하마섬에 살던 어느 날 밤,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다가 목장에서 나와 있던 소와 정면으로 부딪히고 말았어요. 무릎이랑 허벅지 안쪽을 합쳐서 10바늘쯤 꿰매는 부상을 입었어요.
목장에서 도와주신 시마인추(섬 주민) 한 분이, "미키짱, 뭔가에 보호받고 있는 게 분명해. 사고 난 곳, 한번 가서 봐" 하고, 완전 오키나와 억양으로 말씀하셨어요.
다음 날 실제로 사고 난 곳에 가 봤더니, 소들이 드나드는 기둥 바로 옆이었어요. 만약 조금만 더 빗나가서 그 기둥에 머리를 부딪혔다면, 지금 이렇게 살아 있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.
그때는 그냥 "운이 좋았다" 정도로만 생각했어요.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,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그때부터 계속 보호받고, 또 이끌리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. 이 느낌의 정체가 확실해지는 건, 조금 더 나중의 이야기예요.
지금 돌아보며 생각하는 것
이 3년쯤은, 겉에서 보면 "백수가 갑자기 일 때문에 섬에 가서, 정신 차려 보니 기타나 치고 있던 날들"로 보였을지도 몰라요.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, 나중에 인도네시아로 가기로 마음먹기까지의 중요한 바탕이 되어 있는 것 같아요. "말하고 전하는 걸 좋아한다"는 걸 알게 된 것도,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이끌리던 느낌의 정체도, 전부 이 섬에서의 나날 속에 씨앗이 있었어요.
그리고 전화 한 통에 홋카이도에서 외딴 섬까지 이사해 버리는 이 행동력도, 사실 나중에 인도네시아행을 결심하는 데 힘이 된 것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어요. "지금 아니면 안 된다"고 느끼면, 깊이 생각하지 않고 움직여 버려요. 이 성격은 아무래도 예전부터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ㅎㅎ
다음 회에는, 이 이시가키섬에서 지내던 중에 만난 어떤 분 이야기를 써 보려고 해요. 그분과 만나지 못했다면, 저는 도쿄에 가는 일도, 지금의 길로 걸어가는 일도 없었을지 몰라요.
※이 글은 연재 제2화입니다. 제1화(다이제스트 버전)는 이쪽에서 읽어보세요.